어긋남
미리@mado_mil
《장마》
쿠궁. 어둑한 하늘에 천둥소리가 울렸다. 바네사는 하늘을 바라보지 않았으나 조슈아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비가 오겠네요. 먼저 말을 꺼낸 것은 왕녀였다. 그는 그제야 시선을 내려 왕녀를 바라보았다. 그래. 두 눈동자가 얽히는 일은 없었다. 그녀는 올곧게 정면을 보고 걸음을 옮겼다. 그러니 앞서가는 그 모습을 눈에 담는 붉은 빛 눈동자만 남아있었을 뿐이다. 두 사람은 걸었고, 맞춰가는 듯 싶으면서도 어긋났다. 조금 앞서 걷고 있는 것은 바네사로, 그녀는 조금 걸음을 서두르는 듯했다. 그러나 조슈아는 평소와 같은 걸음을 유지하며 흐트러지지 않았다. 그렇다고 바네사가 흐트러지는 것은 아니었으나 빨라진 걸음이 그를 재촉하고 있다는 건 느껴졌다. 그럼에도 그는 고집을 피우듯 굴었고, 결국 그에 맞춰주듯이 서두른 발걸음을 멈추어 그를 기다렸고, 가까이에 와닿을 때쯤 멀어지는 것이 바로 왕녀였다. 두 사람은 아주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거리를 유지하며 걸었다.
쿠궁. 천둥소리가 퍼지고 주변이 소란스러워졌다. 사람들은 서둘러 비를 피하고자 건물로 뛰어 들어갔으며 두 사람도 다를 바 없었다. 근처에 있던 건물은 성당 하나뿐이었다. 두 사람은 파견 이래로 아주 오랜만에 시선을 맞추었다. 가죠. 응. 간단한 합의가 이어졌고, 행동은 바로 이어졌다. 두 사람은 성당 안으로 들어섰으며, 가볍게 젖은 머리와 옷가지를 정돈했다. 성당 안은 고요하여, 들리는 소리라고는 약간의 인기척과 발걸음 소리, 그리고 천둥과 빗소리가 전부였다. 두 사람은 한동안 말없이 정면을 보고 서 있었다. 이번에도 먼저 발을 뗀 사람은 왕녀였으며 그는 오른쪽에 있는 의자에 가 앉았다. 조슈아는 조금 망설이는가 싶더니, 복도를 사이에 두고 왼쪽 의자에 앉았다. 바네사 테레즈 알드 룬은 조슈아 레비턴스를 바라보지 않고 정면만을 응시하다, 조용히 눈을 감고 고개를 숙였으며, 두 손을 모았다. 조슈아는 그런 그녀를 바라보았다. 어느 하나라도 빠짐없이 관찰하려는 것처럼 그렇게 바라보았다. 그러다 문득 고개를 돌려 중앙에 위치한 십자가를 응시했다. 그녀는 그 거대한 십자가 앞에서 고개를 숙였으며, 그는 마주했다. 그것은 빗소리가 끝날 때까지 이어졌다.
쿠궁. 모든 소리가 잦아들고, 구름이 물러가기 시작했다. 그제야 두 사람은 정면을 보았다. 이번에도 먼저 상대를 본 것은 조슈아였다. 그는 단정하고 흐트러짐 없는 왕녀를 보았으며, 그보다 먼저 움직이는 일은 없었다. 왕녀는 옷가지를 정리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반듯하고 우아한 움직임으로 몸을 틀어 입구를 향했다. 비가 그쳤네요. 그래. 성당에 발걸음 소리가 울렸다. 삐걱거리듯 어색하고, 어울리지 않는 듯 균형을 맞추지 못한 발걸음이 밖을 향했고, 푸른 하늘이 두 사람을 반겼다. 찬란한 빛에 바네사 테레즈 알드 룬은 잠시 눈을 감았다가 떴으나, 빛 아래로 걸어 들어갔다. 조슈아 레비턴스는 하늘과 반짝이는 빛 아래로 향해 걸어가는 그녀의 모습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자신이 주어진 의무를 다하는 것처럼, 그 모습을 묵묵히 바라보다 그녀를 따라 빛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단지, 그뿐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