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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시 59분의 유언
2B@2B_LOH

《자유주제》

* 자살을 암시하는 표현이 있습니다.

 

 

 

 

 오늘 밤 11시 59분, 나는 뛰어내릴 거예요.

 당신이 상상할 수도 없는 높은 곳에서 추락할 거예요.

 콧속을 파고드는 짠 내를 마음껏 취하며 물거품과 함께 수몰될게요.

 폐부를 가로지르는 물결이 부디 당신을 해치지 않길 바라요.

 살아요, 조슈아 레비턴스 경.

 

 날 위해 살아요. 악착같이 그 생을 이어나가세요.

 

 

 

 11:00

 

 

 조슈아 경, 그거 알아요?

 무얼 안다는 말이야.

 인어공주 이야기요.

 ……또 그 이야기군.

 

 조슈아 레비턴스는 자신의 곁을 맴도는 바네사 테레즈 알드 룬이 거슬렸다. 계속 웃는 것은 물론이요, 그를 친절하게 대하는 그 태도가 낯설었다. 본 적 없는 미소와 다정한 목소리. 분명 조슈아 레비턴스를 향한 것이 아니었다.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다.

P

  

  11:11

 

 

 ……그래서 인어공주는 물 위를 동경했대요. 물 위엔 뭐가 있을까. 갈매기가 전해주는 멋진 왕자 이야기를 듣곤 항상 그를 기다렸지요.

 그래, 그렇군.

 

 조슈아 레비턴스의 대답은 건조했다. 항상 듣던 이야기. 여기까지는 같았다. 바네사 테레즈 알드 룬은 여전히 미소 짓고 있었다. 그의 반응에 개의치 않고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조슈아 레비턴스는 그녀의 입가를 보았다. 입을 벌리면 새어 나오는 목소리가 어찌나 다정한지 그는 무심코 착각할 뻔했다. 자신이 조슈아 레비턴스가 아니라고.

 

 

 

 11:20

 

 

 왕자는 바다에 사는 모든 것들을 도륙했어요.

 …….

 인어공주는 폭력을 겪은 적이 없었어요. 물밑은 항상 평화로웠거든요.

 ……그래서?

 

 조슈아 레비턴스는 그녀의 이야기에 귀 기울였다. 항상 같았던 이야기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그녀는 하얗게 웃었다. 차가운 공기 겉면에 하얀 미소가 흐드러졌다. 활짝 피었다. 그가 다시는 볼 수 없는 미소였다.

 

 

 

 11:41

 

 

 ……이야기, 끝! 재미있었나요?

 그럴 리가, 없지 않나…….

 

 그는 탄식했다. 잠시나마 달콤한 꿈에 빠져 있다는 착각을 한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결말이 펼쳐진 21분이 증오스러웠다. 그는 현실을 마주했다. 인어공주는 결국 자랑스러운 꼬리를 잃고 인간들의 왕국에 갇혔다. 다시는 나갈 수 없는 높은 벽, 단단한 자물쇠, 삼엄한 경비. 물 밑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바네사 테레즈 알드 룬.

 …….

 왜 대답하지 않지?

 

 그야, 당신이 가장 잘 알고 있을 텐데요.

 

 그녀는 초생달처럼 웃었다.

 

 

 

 

 

 

 

 11:59

 

 

 깊은 밤 11시 59분, 조슈아 레비턴스는 뛰어내렸다. 바네사 테레즈 알드 룬의 마지막 발자국이 남은 그곳에서, 다른 이들은 상상조차 하지 못할 높은 곳에서 추락했다. 코 안으로 밀려 들어오는 짠 내를 양껏 취할 수도, 물거품과 함께 수몰될 수도 없었다. 그에겐 선택지가 없었다. 폐부를 가로지르는 물결은 그에게 자그마한 해 하나 끼칠 수 없었다. 모든 것이 그녀의 소원대로였다. 누가 말했던가, 인어의 소원은 바다와 함께 영원히 물결친다고.

 

 유언이 귓가를 스칠 듯했다가 영원히 맴돈다.

 

 살아요, 조슈아 레비턴스 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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