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조슈아.
강허세@jv_is_good
《거짓말》
안녕 조슈아.
제가 아발론을 떠난지 3주 정도 지났네요. 저는 지금 사르디나에 있어요. 통령님의 추천으로 한 여관에 투숙중인데, 이곳은 원래 헬가 경이 운영하던 곳이었다네요. 신기하지 않나요? 마도대전의 영웅이 운영했던 여관이라니. 아 참. 이틀 뒤에는 로잔나 통령님의 도움으로 큰 음악회에 참여하게 됐어요. 오늘도 같이 참여하시는 분들과 합주 연습을 하고 왔죠. 규모가 커서 그런지 참여하시는 분들도 많고, 음악회가 열리는 곳도 제가 본 어떠한 회장보다 크더군요. 그렇게 큰 곳에서 연주하게 되는 것은 처음이라 긴장도 되고 기대도 되네요.
서론이 길어졌네요. 조슈아 사실 제가 이 편지를 쓰는 이유는, 당신에게 고백할 것이 있기 때문이에요.. 제가 아발론을 떠나야 한다고 결심했던 이유와 당신에게 말해주지 못한 내 진심을 당신에게 고백하기 위해.
우리가 아발론에서 함께 지낸지 2년정도 지났었죠. 당신이 어떻게 느낄지 모르겠지만 처음 당신이 아발론에 기사가 되었을 때와 제가 마지막에 본 당신은 많이 변해있었죠. 좀 더 사람에 가까워 졌죠. 처음엔 당신을 믿지 못하던 기사들과 대련 상대가 되며 친해지기도 하고 루인 경과 야근으로 고생하고, 요한 경과는 술 친구가 되기도 하셨고 말이죠.
사람이 되어가는 당신을 보면서. 조슈아 당신은 제가 무슨 감정을 느꼈을 것 같나요 저는 당신이 사람이 되는걸 원했어요. 당신이 사람이 되어야만 저는 제 감정을 피해자가 흉기에게가 아니라 피해자가 가해자에게 털어놓는게 될테니까. 그런데 조슈아 사람의 감정이란걸 사람에게 푸는건 생각보다 어렵습니다.
당신의 모습이 변해간다는걸 처음 느낀건 당신과의 티타임에서 였어요. 저희가 서로가 원해서 가졌었던 티타임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당신은 그때 루인 경과 있었던 일을 꺼내면서 웃었죠. 겉으로만 짓는 웃음이 아닌 마음속에서부터 지어진 웃음을 보았을 때. 저는 당신이 변해간다는걸 느꼈습니다. 그때부터 였을겁니다. 제 감정이 변해가기 시작한건.
조슈아. 저는 당신을 원망했습니다. 내게 당신이 나오던 꿈은 늘 악몽이었어요. 꿈속에서 당신은 늘 나의 나라를 불태우고, 나의 가족을 살해했습니다. 그런데 조슈아. 앞서 말한 티타임을 가진 다음, 당신의 변해가던 모습을 지켜보면서 시간이 지나자 제 꿈이 변해갔습니다.
처음으로 당신이 내게 악몽으로 나타나지 않았을 때. 그 꿈속에서 당신은 내게 미소를 지었습니다. 그것은 악몽이 아니었지만 그 어떤 악몽보다 끔찍한 꿈이었습니다. 그런 당신을 보며 꿈에서 깨어나는 순간 비명을 지르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비명은 커녕 작은 목소리 마저 나오지 않더군요. 그러고는 혐오스러워서 참을 수 없었어요. 날 보며 미소 지은 당신과 더 이상 당신이 악몽으로 나오지 않을 걸 알게 된 저 자신이 너무나 혐오스러워서 참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조슈아 저는 그 꿈을 꾼 날 당신에게 제 감정을 털어 놓으려 했습니다. 내가 짊어진 이 짐을 털어놓고, 더 이상 혼자서 아프고 싶지 않았습니다. 기억할지 모르겠지만 조슈아 당신을 찾아와서 아무 말 않고 울던 절 기억하나요? 그날이 그날이었습니다. 당신을 불러 당신을 비난하고 당신이 아파하는걸 보려고 했었습니다. 그런데 조슈아 당신을 부르고 당신에게 내게 쌓인 모든걸 말하려고 할 때 당신의 아파하는 모습이 떠올랐어요. 그리고 그 모습을 떠올리자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고 눈물만 흘러내렸죠. 그때는 이유를 몰랐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알겠네요. 당신이 아파하는 모습을 보고싶지 않았던 것이었습니다. 우습지 않나요? 혼자 아프고 싶지 않고 당신이 아파하는걸 보기 위해 말하려 했지만 막상 말하려 하니 당신이 아파하는걸 보고싶지 않아서 말하지 못하는 꼴이라니. 그런데 조슈아 당신의 다음 행동은 절 더욱 괴롭게 만들었습니다.
당신은 절 부르다 대답없이 울고있는 저를 가볍게 안았습니다. 조슈아 이게 얼마나 저를 괴롭게 했는지 아시나요. 당신은 제가 우는 이유를 알지 못했겠지요. 하지만 당신은 우는 저를 말 없이 가볍게 품에 안아주었습니다. 그건 당신이 타인의 슬픔을 동정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 사람이 되었다고 해도 되겠죠. 당신이 사람이 되는걸 기다렸고, 당신은 사람이 됬지만 저는 오히려 더 괴로워지는 이 기분을. 조슈아 당신은 아나요?
그리고 저는 당신의 품에서 도망치듯 방으로 돌아와서 한참을 괴로워했습니다. 떠나간 사람들이 떠올라서. 그들을 기억하고 있어서 괴로웠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걸 풀 수 없었어요. 그게 전부 당신 탓이 아닌걸 아니까. 설령 당신이 모든게 당신의 죄라 하더라도 저는 이미 그렇게 생각할 수 없게 되었으니까. 저는 도구가 아닌 한 사람에게 죽어간 모든 이들에 한을 쏟는 일은 하지 못하는 사람이었으니까.
한참을 울며 괴로워 하다가 노크 소리가 들렸죠. 보이지 않아도 당신임을 직감했어요. 그래서 문을 열지 않고 당신에게 말했죠 네 조슈아. 하고 당신은 잠시 말이 없다가 괜찮냐고 물었죠. 괜찮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제 입은 이미 괜찮다고 답했죠. 당신은 그저 그래. 라고만 대답했죠. 그리고 저는 그 날 방에서 나오지 않았죠. 나중에 샬롯 경이 말해줘서 알았지만 당신이 제 방앞에서 한참을 서있었다고 들었습니다. 이제서야 물어볼 수 있겠네요. 당신은 저를 기다렸었나요?
다음 날. 저는 최대한 아무렇지 않게 행동했습니다. 당신도 그런 저를 보고 평상시 처럼 행동했죠. 하지만 한 번 터진 감정은 더 이상 추스를 수 없더군요. 당신을 볼 때마다 내 가슴 한켠이 조이는 것 같았고. 눈물이 터질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결코 느껴선 안 될 다른 감정도 하나 느꼈습니다. 그건 나중에 말해줄게요.
조슈아. 그 때의 저는 당신을 볼 때마다 더 이상 그 전의 저처럼 당신을 대할 수 없었어요. 하지만 당신을 마주하지 않을 수는 없었죠. 저희는 이미 서로에 일상에 자연스럽게 녹아든지 오래였으니까. 그래서 저는 제 일상에서 떠나기로 했습니다. 다른 누군가에게는 털어놓을 수 없고 오직 당신에게만 털어놓을 수 있는 감정을, 당신에게도 털어놓지 못하게 되었으니까. 이기적인 선택이었습니다. 내 옆에서 내가 사랑했던 모든 사람들 나의 백성들 나의 가족들. 그 모든 사람들을 배신하는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저는 사람입니다. 사람에겐 누구나 한계가 있듯이 저에게도 한계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한계가 찾아온 것이었죠.
저는 로드에게 며칠 뒤에 아발론을 떠나겠다고 말씀드렸죠. 로드께선 이유는 따로 묻지 않고 미소로 긍정적으로 답해주셨죠. 제가 떠난다는 이야기가 퍼지고, 많은 기사분들이 진위여부를 묻고 어떤 분들은 이별선물을 주시기도 했죠. 고마웠습니다. 그분들을 보며 내가 잘못 살아오지 않았다는걸 증명받는 기분이었거든요. 그리고 조슈아 당신은 저를 일부러 피하다가 제가 떠나기 바로 전 날 밤에 혼자서 저를 찾아왔죠. 밤 늦게 제 방에 찾아온 저를 찾아온 당신은 어딘가 슬퍼보였습니다.
내일 떠나는건가? 하고 당신이 물었죠. 저는 네라고 대답하고 그 동안 즐거웠다고 덧붙이려 했지만 당신은 제 말을 자르고 말했지요. 가지 마. 라고. 그러고는 한번 더 가지마. 그때 이미 당신의 얼굴엔 슬픈 표정이 지어지고 있었어요. 저는 이미 마음을 정했다고 했죠. 그 말을 듣고 당신이 떨리는 목소리로 무언가를 말하려 했죠. 왕녀, 당신이 없으면 나는 어떻게 해야하냐고. 당신을 보며 살아왔는데. 왕녀. 나는 당신을. 울 것 같은 당신을 보며 제가 말을 끊었죠. 조슈아. 저는 당신이 원망스러워요. 하고 저는 다시 당신을 보며 느껴지는 아픔을 참으며 모든 걸 당신에게 말했습니다. 저는 당신을 볼 때마다 절 위해 죽어간 모든 이들이 생각나요. 변해가는 당신을 보며 내 가슴은 찢어 지는 것 같아요. 그러니까 조슈아 제발 더 이상 말하지 말아줘요 라고. 제가 그 때 당신 표정은 울 것 같았다고 했었죠? 하지만 우습게도 어느샌가 울고 있는건 저였습니다. 더 이상 말하지 못하고 우는 저에게 당신은 그저 미안해. 라고 말하며 제 방을 떠났죠.
그리고 다음 날 떠나는 저에게 당신이 나와 제 손에 무언가를 쥐어졌죠. 반지의 사슬을 목걸이 줄로 갈아 끼운 당신의 펜듈럼을요. 당신은 아무렇지 않다듯이 말없이 제 손을 잡고있다가 웃으며 말했죠.
잘 가 바네사. 하고 그러곤 저도 웃으며 답했죠. 안녕 조슈아. 라고.
조슈아. 고백할 게 있다고 했던 말 기억 하나요. 지금부터 당신에게 한 제 거짓말들을 고백할게요. 사실 저는 제가 끊지 않았다면 나왔을 당신의 다음 말을 알고 있었습니다. 이건 당신도 어렴풋이 제가 눈치챘다는걸 알았겠죠. 조슈아 당신이 제게 그 말을 했을 때, 저는 당신을 원망했습니다. 하지만 이미 저는 당신에 대한 하나의 감정이 원망보다 커져 있었습니다. 당신을 볼 때 가슴이 아파지는 이유. 더 이상 당신에게 내 감정을 털어놓지 못하게 되었던 이유. 그건 원망이 아니었죠. 당신도 저에게 가지고 있었던 그 감정. 당신이 감히 입에 담지 못하다 제가 떠나는 날이 되어서야 말하려 했던 감정을, 사실 저도 당신에게 느끼고 있었던 겁니다. 조슈아. 그날 밤 당신에게 그 이상 말하지 말아달라 했던 것은, 당신의 다음 말을 들으면 떠날 수 없을 것 같기 때문이었습니다. 당신을 원망한다고 했던 것. 더 이상 말하지 말라달란 것. 조슈아 이게 제 첫 번째 거짓말이었습니다.
조슈아. 제 두 번째 거짓말은, 저는 아발론을 떠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떠난다는건 거짓말이었습니다. 저는 내가 사랑했고 나를 사랑해 주었던 모든 이들, 그리고 당신에게서 도망치는 것이었습니다. 웃기지 않나요. 도망치지 말라고 말한 저였지만, 도망치지 않은 당신을 보고 도망치는 저라니. 무거운 짐을 버티지 못해 도망치는, 이런 저를 어떻게 생각하나요. 제가 원망스러운가요. 차라리 그런다면 좋았을 텐데. 차라리 저희가 서로를 원망했더라면. 저는 당신에게 모든 걸 쏟아 낼 수 있었을 텐데. 내 아픔이 나의 탓이 아닌 당신의 탓으로 돌릴 수 있었을 텐데. 하지만 조슈아. 우린 서로를 더 이상 원망하지 않았어요. 그렇기에 저는 당신에게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지요. 조슈아. 그럼 제 감정을 더 이상 당신에게 풀 수 없다면, 당신이 더 이상 아파하는 것이 보기 싫어졌다면. 저는 누구에게 제 감정을 말해야 했었나요. 제 감정을 제일 잘 아는 사람은 당신인데. 저는 누구에게 이 마음을 말해야 했었나요. 저는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도망쳤습니다. 조슈아. 만약 당신이라면 어떻게 했을 것 같나요.
조슈아. 사실 저는 도망치고 싶지 않았어요. 아발론에 계신 모든 분들과 더 시간을 보내고 싶었어요. 아니 당신과 있고 싶었어요. 당신이 변하는걸 더 보고 싶었고 당신의 웃음을 한번 더 보고싶었어요. 하지만 조슈아. 저는 과거를 잊지 못하고 기억해야 해요. 제가 사랑했던 사람들을 기억해야 해요. 그것이 산 자의 도리고 의무니까. 그러기에 당신이 사람인걸 깨달은 저는 당신에게 그들에 대한 사과를 요구해야 했겠죠. 그런데 조슈아. 저는 더 이상 당신을 마주 볼 수 없었어요. 사람이 되어 더 나은 존재가 되려하는 누군가를 아프게 하는걸 저는 할 수 없는 사람이었어요. 하지만 저는 죽어 간 모든 이들을 기억해야 해요. 저는 이 모순을 견딜 수 없어요. 그래서 조슈아. 저는 죽어가는 이들을 대변해야 하는 저와 당신을 상처 입게 하고 싶지 않은 저. 당신을 향한 원망과 당신을 향한 애정. 저는 이 모순들을 혼자 떠안고 떠나기로 했어요. 제가 기억하는 사람들이 아파하는 것보다도 저와 살아가는 사람이 아파하는 걸 보기 싫었어요. 그래요. 조슈아. 제가 기억하는 모든 이들보다 당신이 아파하는걸 더 보고싶지 않았어요. 조슈아 이게 제 마지막 거짓말이었습니다.
편지가 길어졌네요. 조슈아. 아발론을 떠나고 가끔 이런 생각이 들어요. 만약 다음 생이 있다면 하고요. 만약 정말로 다음 생이 있다면 조슈아. 당신과 이렇게 만나고 싶지 않아요. 더 이상 아프지 않고 당신의 미소를 보고싶어요. 그러니 조슈아. 이번 생에는 서로를 잊고 살아가도록 해요. 그리고 다음 생에 저희가 다시 만나 아파하지 않고 서로를 마주 볼 수 있게 된다면 그 때는 제가 먼저 인사할게요.
안녕 조슈아. 라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