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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된
키즈

《거짓말》

 

 

 

 

 제게 용서를 바라나요?

 

 힘이 들어가 평소보다 낮은 목소리가 물었다.

 

 아직도 내가 죽지 않길 바라나?

 

 체념을 담은 목소리는 답을 바란 것이 아닌 듯했다.

 

 

 조슈아 레비턴스,

 

 

 역설인지 당위인지 조슈아 레비턴스로서는 알 수 없었지만, 사람으로 살고자 할수록 삶을 포기하는 것은 더욱 쉬워졌다. 자신이 도구가 아닌 사람이라는 생각이 조금이라도 드는 밤이면 그날 이후로 찾아올 날들을 전부 놓아버리고 사라지고 싶은 것이다.

 

 제 생각을 읽을 줄 아는 걸까. 당장이라도 치사량의 독을 탄 홍차를 입에 털어 넣자고 마음먹는 그런 날이면 바네사 테레즈 알드 룬은 거짓말같이 조슈아의 방문을 두드렸다. 조슈아는 문고리를 돌리기 전에 심호흡이 필요했다. 바네사 앞에만 서면 덜 마른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쓰고 있는 것 같았기에. 저도 모르게 어깨가 무거워 아래로 축 처지다가 까딱하면 주저앉을 것처럼 굴었다.

 

 

 그의 거짓말.

 

 

 조슈아 경, 제게 용서를 바라나요?

 

 조슈아는 생각했다. 고요하고 눅눅한 네 증오가 이쪽을 향할 때 비로소 내가 사람이 된 것만 같다고. 자신을 다른 기사들과 동등하게 대우해 주는 아량이, 고운 입에서 나오는 다정한 말이 오히려 나를 빈 껍데기로 만든다고. 그러니 나를 용서하지 말라고.

 

 차마 입 밖으로 뱉을 수는 없었다. 축축하게 젖은 녹음綠陰에는 불이 붙지 않는다. 조슈아는 꺼져가는 불씨와 같았고 바네사는 비가 내리는 숲이었다. 젖은 장작에 아무리 스스로를 던져봐야 불씨는 살아나지 않는다. 조슈아는 죽음이 두렵지 않다. 이전에도 이후에도 그럴 것이다.

 

 “그래.”

 

 

 바네사 테레즈 알드 룬,

 

 

 바네사 테레즈 알드 룬은 홀로 남은 밤이면 어김없이 날카로운 증오를 손에 쥐었다. 차마 남자를 찌르지 못하는 증오는 제 손만 파고들 것을 알면서도 그랬다. 그렇게 하루, 이틀, 일주일, 한 달……. 수십일이 지나고 또 수백일이 지나 더 이상 정확한 수를 세는 것이 무의미해질 때쯤 바네사는 상처투성이가 된 제 손과 그 안에서 닳고 닳아 뭉툭해진 증오를 마주했다.

 

 바네사는 죽음이 가장 무거운 벌임과 동시에 가장 가벼운 벌이라고 생각한다. 어느 날은 꿈을 꾸었다. 천칭저울을 손에 든 신神이 묻는다. 죽음으로만 갚을 수 있는 죄가 있고, 삶으로만 갚을 수 있는 죄가 있다. 그 남자의 죄는 어느 쪽인가? 대답할 수 없었다. 다만 꿈에서 깨어난 후 남자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자비로써 원망을 보여줄 뿐이었다.

 

 

 

그의 거짓말.

 

 

 왕녀. …… 아직도 내가 죽지 않길 바라나?

 

 남자를 원망할지언정 화는 내선 안 됐다. 분노의 방향은 더 위로 향해야 한다는 것을 확실하게 알고 있었다. 그러나 바네사는 남자가 도구가 아닌 사람이 되어가는 과정을 지켜보며 화가 났다. 동시에 원망은 무력해졌다. 그 사실을 자각하고 소름이 끼쳐서 바네사는 상처투성이가 된 손으로 무뎌진 증오를 아무도 없는 곳에서 홀로 휘두르곤 하는 것이다.

 

 ‘아무도’. 다만 남자는 거기에 포함되지 않았다. 그가 문을 두드리면 남자는 언제라도 맞은편에서 문을 열었다. 문턱을 사이에 두고 서로 다른 세계인 양 선을 넘지 않았다. 선 안에 있는 남자에게 선 밖에서 휘두르는 증오는 우습기만 할 터다. 물론 우습다는 생각을 하지 않으리란 것을 안다. 남자의 시선이 휘둘리는 뭉뚝한 증오보다 그에 갈가리 찢긴 제 손바닥에 향하는 것을 바네사는 모른 척하기로 했다.

 

 “아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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